Ayden's journal

오염된 프레임과 <돌이킬 수 있는>

‘사전 지식’이라는 것이 있다고 해보자.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전 지식’이란 ‘어떤 책을 읽기에 알아두면 좋을 지식’을 칭한다. 분명 비슷한 개념 혹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을 지칭하는 아예 다른 단어가 있을 것도 같은데 ─ 그리고 언젠가 그런 단어를 본 적도 있는 것 같은데 ─ 마땅히 기억나지는 않기에 아무튼 이 글에서는 ‘사전 지식’이라고 부르겠다.

이것이 ‘배경 지식’과 얼마나 다른지는 설명하기가 미묘하다. 나 자신도 두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거니와, 일단 ‘사전 지식’은 존재한다고 가정한 개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프랑스의 위대한 문인 알베르 까뮈 선생의 <페스트>를 가지고 두 개념을 설명해본다면 대강 이러할 것이다.

 

배경 지식 : <페스트>의 작가는 프랑스 태생의 알베르 까뮈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어쩐지 중세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20세기 중반이다.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에 불과”한 알제리의 오랑 시를 배경으로 갑작스럽게 발생한 흑사병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 군상을 그린 소설이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며 페니실린을 발견하기 전 인류에게는 답이 없는 병이었다.

 

사전 지식 : 기본적으로 군상극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장르적으로는 ‘재난 소설’에 가깝다. 의사와 성직자 등이 나오며 이 두 인물의 갈등이 플롯의 구조적인 부분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인다. 이야기는 약 1년 정도의 시간적 범위를 가진다.

 

이 두 가지 개념을 선지식과 스키마로 각각 대입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철학에 정통하지는 않기에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무튼 배경 지식이 그야말로 ‘지식’이라면 ‘사전 지식’은 책의 내용을 구조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일종의 ‘프레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없어도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있는 편이 원활한 독서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잘못된 프레임을 가진 채로 책을 읽을 때 발생한다. 언젠가 ‘책 끝을 접다’에서 이 책 <돌이킬 수 있는>에 대한 소개를 접한 적이 있다. 스쳐 가듯 접한 것이라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싱크홀이 생기고 초능력자가 나온다는 것까지는 머리에 남았다. 이후 몇 년 뒤에 <마이 네임>이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봤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드라마의 내용과 <돌이킬 수 있는>에 대한 소개가 섞여버리고 말았다. 프레임이 오염되어버린 것이다.

오염된 프레임을 통해 책을 받아들이게 되면 당연하게도 내용을 잘못 이해하게 된다.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있으니 읽고 있는 부분과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서사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이 충돌의 마찰의 열기가 불쾌하다고 할까 사람 거슬리게 만든다. 이게 지속되면 결국에는 책을 덮고 ‘정말 재미 없는 책이었어’ 같은 평가 하나 겨우 남긴 채 기억 속에서 영영 잊힐 것이다.

 

주변에서 정말 재미있는 책이라고 꾸준히 추천해주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도 이 책을 영영 잊고 말았을 것이다. 오염된 프레임을 ‘로그라이크 독서법’으로 바로잡아가면서 ─ 이 독서법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른 책을 다루면서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 초중반부를 넘어가자, 주변의 추천사를 나 역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킬 수 있는>은 잘 짜여진 설정 위에서 그 설정을 훌륭하게 반영하는 인물을 통해 딱 떨어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짧게 줄이면 정말 재미있고 잘 쓴 소설이라는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조금 더 늦게 찾아오도록 구조를 조정하는 편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남는다. 그 깨달음 때문에 ─ 그리고 딱 맞물리도록 짜인 이야기 덕분에 ─  이어질 내용들을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회귀물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미약한 변주를 시도하는데, 이 변주가 후반을 살짝 난해하게 만든다. 나는 이 변주가 ─ 회귀물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지 않기 때문에 ─ 작가 고유의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지만, 이 변주가 가져오는 난해함은 후반부의 테이스트를 극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로써 사용된다.

‘첫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고 강렬한 이야기’라는 평가는 옳다. 아무래도 이 책은 앞으로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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