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역사와 지울 수 없는 <한니발>
나는 초기 로마사에 관심이 많다. 라티움의 작은 도시국가에 지나지 않던 로마는 어떻게 영토를 넓혀갔을까. 왕정은 어쩌다 공화정이 되었으며, 시민 권력은 무슨 이유로 황제에게 그 권력을 넘겨주게 되었을까. 로물루스 이전부터 로마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까지 거의 800년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이러한 격랑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포에니 전쟁은 로마가 아직 공화정을 유지하던 시절에 상업 국가 카르타고를 상대로 벌였던 세 차례의 전쟁을 지칭한다. 이 세 번의 전쟁에서 카르타고는 모두 패했고,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시켰으며, 이탈리아반도와 이베리아반도, 그리고 지중해 남부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전쟁의 결과의 결과로 로마 공화정이 몰락하고 제정이 들어섰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로마 ‘공화정’과 카르타고 모두를 멸망시킨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포에니 전쟁을 모르는 사람조차도 ‘한니발 바르카’의 이름은 알고 있지 않을까? 만약 이름을 모른다 해도 ‘전투 코끼리를 데리고 알프스산맥을 넘어서 로마를 침공한 장군’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아, 그 사람 이름이 한니발이었구나’ 한다. 한니발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활약한 카르타고의 명장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카르타고는 세 번의 포에니 전쟁을 모두 패배했고, 한니발 바르카 역시 최종적으로는 로마에 패퇴했다. 그런데 한니발을 패퇴시킨 로마의 장군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더욱 의아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한니발 :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를 읽으면서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우선 17년 정도 되는 2차 포에니 전쟁 동안 로마의 장군은 매년 다양한 사유로 ─ 보통은 전사 ─ 갈려 나갔지만, 한니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카르타고 군을 이끌었다. 요컨대 2차 포에니 전쟁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로마의 그 어떤 장군도 전투에서 한니발을 제대로 패배시키지를 못했다. 소규모 교전에서의 승리는 있었겠으나, 그마저도 대부분이 적을 기만하기 위한 한니발의 계략에서 비롯한 전략적 패배일 뿐이었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역시 로마 본토에서 한니발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히스파니아 ─ 당시 카르타고의 식민지로서 현재의 이베리아반도 ─ 정벌을 통해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한니발의 동생들을 상대했고, 카르타고 원로원으로 하여금 한니발보다는 그의 동생들 쪽으로 지원군을 보내도록 유도했다.
칸나이 전투 이후로 로마군의 기조는 지연 전술로 굳어갔다. 흔히 파비우스 전략이라고도 부르는 이 전술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무제한적 소모전’이라 할 수 있겠다. 로마는 본토에서 싸우는 이점을 십분 활용해 수 많은 대패 속에서도 계속해서 수만 단위의 병력을 충당할 수 있었고, 군량미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제해권이 없는 카르타고는 로마 본토로 지원을 보낼 수 없었고, 한니발의 군대는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으로 보급이 끊긴 왜국의 육군처럼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만의 로마군을 죽이고 고작 수천 밖에 잃지 않았지만, 로마군이 수만을 수십만으로 복구하는 동안 한니발은 그 수천을 복구할 수 없었다.
카르타고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에게 한니발이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히스파니아에서 그의 동생들이 스키피오를 상대로 승전을 거두었더라면 ─ 형은 5만으로 9만을 이겼는데, 동생들은 7만의 군사로 4만을 못 이겼다 ─ , 하르두르발이 메타우루스에서 이겼더라면 ─ 이건 한니발 잘못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6만으로 4만을 못 이겼다 ─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김상욱 교수는 전쟁을 물리학의 개념에 빗대 ‘특이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요컨대 전쟁의 이전과 전쟁의 이후가 근본적으로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 2차 포에니 전쟁은 분명 로마 공화국 역사의 특이점이다. 이전까지는 리비우스의 <로마사>와 폴리비오스의 <역사>를 통해서만 한니발을 알았는데, 이는 당대에 쓰인 것도 아닐뿐더러 승전국의 역사가가 남긴 뒤틀린 전쟁귀로서의 한니발일 뿐이다. 2차 포에니 전쟁을 카르타고와 한니발의 시점으로 재구성해보려 했던 작가의 야심이 로마사 덕후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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