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den's journal

밀려오는 부동산의 압박과 <총, 균, 쇠>

내가 졸업한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지식과 정서 함양을 위해 매 학기 책을 사주는 정책을 시행했었다. 고를 수 있는 책은 추천 도서 목록으로 한정되었지만, 덕분에 내 돈 주고는 절대 안 살 것 같은 <사피엔스>나 <총, 균, 쇠>, <설국> 등의 책을 얻게 되었다.


대학 졸업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지금에 와서야 그때 받은 책들을 하나씩 펼쳐보고 있는 건, 올해 목표를 ‘사놓고 안 읽은 책 해치우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설국>은 본문이 고작 170p 남짓이라 출퇴근 시간에 들고 다니며 읽기 수월하다. 그러나 <사피엔스>나 <총, 균, 쇠>는 둘 다 700p가 넘는 이른바 벽돌책이다. <사피엔스>는 전자책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대안이라도 있지만, <총, 균, 쇠>는 그런 것도 없다. 이런 경우에 나는 vFlat이라는 어플을 사용해서 책을 스캔하고, pdf로 만들어서 아이패드에 넣어버린다. 아이패드 프로가 가볍지는 않더라도 벽돌책을 직접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야 세 배쯤 가벼울 것이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이것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느 문명은 총, 균, 그리고 쇠로 대표되는 요소를 갖췄는데, 다른 문명은 그러지 못한 까닭을 ─ 요컨대 문명 간의 발전 속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 서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총이 무력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식량을 생산하지 않는 전문화된 엘리트’ 혹은 ‘식량 생산’ 그 자체를 상징한다. 수렵 채집에서 식량 생산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단위 면적당 생산되는 칼로리가 늘어나게 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거처가 고정되고 인구 부양 능력이 늘어난다. 인구 밀도가 증가하면서 잉여 농산물이 발생하고, 잉여 농산물이 인구 밀도를 다시 증가시키는 양의 되먹임 고리가 돌아간다. 잉여 농산물이 권력을 집중시키며, 또한 식량을 생산하지 않는 전문화된 엘리트가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지역에 따라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식물 종의 차이가 있었고, 이것이 문명 간의 발전 속도를 결정하는 가장 주된 요소라고 저자는 보았다.


균은 ‘야생 동물의 가축화’를 상징한다. 가령 야생마는 가축화되면서 더 넓은 범위로의 전쟁을 가능케 했다. 소는 쟁기의 도입으로 기존에는 경작이 어려웠던 지역에서 식량 생산을 가능케 했다. 이렇게 동물들과 가까워지면서 가축전염병이 돌연변이를 통해 인간에게도 병원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천연두의 경우에도 설치류에서 낙타를 거쳐 인간에게 넘어왔는데, 이는 각각 곡물 저장(설치류)과 가축화(낙타)를 상징한다. 지역에 따라 ─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이 없거나 적었는데, 이는 곧 지역에 따른 균에 대한 저항성 차이를 보여준다. 스페인의 군인 수백명이 수십 만명의 아즈텍과 잉카를 토벌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균에 대한 저항성 차이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쇠는 ‘기술’을 상징한다. 수렵 채집 민족은 기본적으로 유랑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휴대할 수 있는 기술만을 가지게 된다. 그에 비해 식량 생산하는 민족은 대체로 정주해있기 때문에 소유할 수 있는 기술의 크기가 늘어나고, 그 수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다양한 기술을 일상적으로 자주 접해야 새로운 기술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무역이 발달하면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발명된 기술이 다른 지역의 기술을 촉진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를 ‘아이디어 확산’이라고 이름 붙였다. 가령 문자 체계가 직접 전파되지 않더라도 그런 게 있다는 소문만 듣고도 비슷한 체계를 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량과 가축, 그리고 기술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저자는 추가로 ‘시간’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미국이 태평양에 진출했을 때, 하와이는 집중적인 식량 생산으로 고도화된 정치 환경이 조성된 거대한 왕국이었다. 만약 충분한 시간이 주었다면 하와이가 미국 본토를 점령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문명의 차이가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과도 궤를 같이한다.


<총, 균, 쇠>는 ─ <사피엔스>와 마찬가지로 ─ 다 읽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넘기려 했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부동산의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만인이 추천하는 책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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