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책의 선과 <장미의 이름>
에코의 저작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호학자로서의 명성과 이 책을 여러 번 읽은 지인들의 ─ 주로 독서 난이도에 대한 ─ 경고를 자주 들었기 때문에, 읽어야겠다 생각만 하고 주저하기를 여러 달이었다. 두 권 합쳐 900여 페이지나 된다는 것도 저어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꺼운 <듄> 1권을 독파하고, 이후로도 ‘벽돌’이라 불리는 종류의 소설을 여러 권 읽으며 나름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장미의 이름>을 읽을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950여 페이지의 <듄> 1권은 나흘 만에 다 읽었다. <총, 균, 쇠>는 그보다 200여 페이지가 적은데도 내용의 밀도로 인해 거의 이레 내내 읽어야 했다. <오버 더 호라이즌>과 <오버 더 초이스>는 두 권 합쳐서 12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각 권 하루씩 이틀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도중에 2박 3일의 강릉 여행 일정이 있었지만 ─ 사실 여행지에서도 때때로 읽었다 ─ <장미의 이름>을 다 읽어내는 데에는 꼬박 보름의 시간이 필요했다.
소설의 뼈대는 아주 클래식한 추리 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위에 피와 살은 신학과 철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년과 올해 적지 않은 수의 역사책을 읽은 덕분에 아비뇽 유수와 관련된 내용은 기본적인 수준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이 요구하는 수준은 그 이상이었다. 곳곳에 상세한 주석이 달려있었으나, 그 주석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책 옆에 아이패드를 두고 자주 검색해야 했다.
‘소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신학적 대립이나 ‘웃음은 죄악인가’에 대한 배스커빌의 윌리엄과 부르고스의 호르헤 사이의 ─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 논쟁보다도, 나를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모든 서책은 자유롭게 읽힐 수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14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작중 다양한 종류의 금서가 등장하고, 배경이 되는 수도원에는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장서관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곳은 장서관 사서 외에는 접근할 수 없고, 필요한 서책은 반드시 사서를 통해서만 열람이 가능하다. 만약 사서가 불허하면 해당 서책은 수도원장이라 할지라도 열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책의 선은 읽히는 데 있다. 서책은 하나의 기호를 밝히는 또 하나의 기호로 되어있다. (중략) 이를 읽는 눈이 없으면, 서책은 아무런 개념도 낳지 못하는 기호를 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런 서책은 벙어리나 다를 바가 없다.」
라고 배스커빌의 윌리엄이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이 자체가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에코가 직접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다.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러기 어려운 데가 있기도 하다. 널리 잘 알려진 ‘의사와 살인자의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선악이 나뉘는 것이지 칼 그 자체에는 선도 악도 없다. 그러나 일정 규격을 초과하는 도검에 대하여 국가 단위로 관리를 하는 것처럼, 어떤 서적의 경우에는 너무 위험하여 특별한 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
가령 백일휴가에서 돌아온 갓 일병 된 녀석이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나 김일성의 <세기와 더불어> 같은 책을 ─ 어떻게 구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 부대 내로 반입하려 한다면 분명 행보관에게서 좋은 반응이 나오지는 않으리라. 그러니 서책의 선이 읽히는 데 있더라도, 그것은 집단의 성격 등에 따라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
1권을 읽고서 나는 '에코가 주최하고, 배스커빌의 윌리엄과 멜크의 아드송이 진행하는, 내 대가리를 터트려버릴 정보의 대축제'라고 짧게 평한 바 있다. 정보의 밀도가 높은데도 어찌어찌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도 물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꽤 웃기기 때문이다. 월리엄과 아드송의 관계는 분명 홈즈와 왓슨의 오마주일 테지만, 가끔은 덤 앤 더머 ─ 아니면 핸드레이크와 솔로처 ─ 의 오마주가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저항 없이 웃게 되는 장면이 여럿이다.
분명 쉽게 추천하기 어려울 만큼 난이도가 있지만,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나가면 그 어떤 소설보다 다양한 맛을 낸다.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누가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온 책을 침 묻혀서 페이지를 넘기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장미의 이름>을 읽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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