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껍을 쓴 외계인과 <파운데이션> 시리즈
총 7권으로 구성된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SF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는 명작이다. 이 시리즈를 한데 묶어주는 개념은 단연 ‘심리역사학’이다. 위대한 수학자 해리 셀던에 의해 고안된 이 학문은 과거와 현재의 인간 집단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미래에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게될 지를 예측한다. 이러한 심리역사학의 도움으로 주인공들은 인류 제국의 멸망이라는 거시적인 위기를 가장 미시적인 방식으로 해쳐나가게 되는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이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생에 두 번에 걸쳐 집필하였다. 20대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잡지에 연재한 내용을 엮어서 1~3권을 출간하였다. 이후로 이 시리즈에 대한 팬들의 속편 요청에 잡지 연재로부터 무려 30여년이 지난 1982년부터 다시 4권의 내용인 <파운데이션의 끝>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파운데이션을 향하여>는 아시모프의 유작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1권에서 3권까지(본편)의 분위기와 4~5권(시퀄), 그리고 6~7권(프리퀄)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프리퀄을 가장 즐겁게 읽었지만, 아시모프가 이 시리즈를 통틀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시퀄에서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터미너스 설립 500년 정도 되었을 때, 터미너스의 시의원 골란 트레비스는 셀던 위기라는 개념 자체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제2 파운데이션 외에도 다른 세력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고 있다고 생각한 트레비스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모험을 떠나게 되고, 이 결과로 ‘제2 우주 제국’과 ‘은하 대통합(갤럭시아)’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5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트래비스는 “여기 우리들 가운데 더이상 적이 있지 않으니까요." 라는 말을 남긴다. 나는 이것이 캐릭터의 입을 빌려 아시모프가 직접 하고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고도화 된 종(種)은 결국 은하 전체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만약 하나의 은하를 지배하는 종이라면 다른 은하도 지배하고자 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분열되어있으면 외부 은하의 존재가 우리를 쉽게 지배하거나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외부의 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 반목하지 않고 화합해야만 한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꽤 의미심장하다. 만약 우리 사이에 반목을 꾀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우리 인류종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외계의 존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퀄이 출간된 82년도와 86년도가 냉전의 한가운데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 그리고 소련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죽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생애를 생각해보면 ─ 충분히 납득 가능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 어떤 시리즈가 ‘출간 후 팬들의 요청에 의해 속편 집필이 시작되었다’는 점은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듄> 시리즈가 동일하다. 그런데 <듄> 시리즈는 5권부터 너무나도 달라진 분위기에 결국 읽지 못했던 것에 반해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7권까지 모두 다 즐겁게 읽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1. 장편과 단편 :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1~3권은 잡지에서 연재되었던 단편과 중편을 한데 엮은 중단편집의 성향이 강하다. 1권만 해도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단편에서 주인공이 ‘가알 도닉’, ‘루이스 피렌’, ‘샐버 하딘’, ‘림마 포네츠’, ‘조레인 서트’로 다양하다. 심지어 1권의 첫 단편이 끝나고 두 번째 단편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5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덕분에 독자로 하여금 이 시리즈가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순간에 ‘셀던 위기’를 겪는 이야기”라는 인식을 강하게 남긴다.
그에 반해 <듄> 시리즈는 장편이다. 여러 권에 걸쳐 하나의 인물이 혹은 하나의 가문이 은하 정치적인 위기를 타고 넘으며 인류의 미래를 ‘황금의 길’로 이끄는 내용이다. 때문에 4권에 이르는 동안 독자는 이 시리즈를 “하나의 인물과 하나의 가문이 은하계를 ‘황금의 길’로 이끄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스파이스 멜란지는 인물을 움직이는 동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고, 그래서 주요한 인물이 사실상 모두 교체되는 5권이 아예 다른 시리즈인 양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2. 글쓰기의 황금률 : 프랭크 허버트는 다양한 작품을 썼지만 널리 알려진 작품은 <듄> 시리즈 하나 뿐이다. 그에 비해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의 저서 대부분이 널리 알려져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물론이고 <바이센테니얼 맨>이나 <전설의 밤>, <파테 드 푸아그라>, <로봇> 시리즈까지 수많은 그의 저서들이 SF의 클래식으로서 읽히고있다.
<듄>의 1권부터 4권까지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허버트는 글을 장황하게 쓰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아시모프는 어느정도 절제되어있음에도 충분한 수준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국 아시모프는 글쓰기의 황금률을 깨달은 자로서 어떤 소설을 쓰던 재미있게 써낼 수 있는 사람인거고, 허버트는 배경 설정 같은 건 참 좋지만 황금률은 깨닫지 못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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