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잇 스프린트 1기를 수료하며
아주 오래된 질문
나는 한국에서 남자 간호사 만큼이나 보기 드문 남자 영양사이다. 대학을 식품영양학 전공으로 졸업했고 직장 생활도 영양사 자격으로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자기소개를 하다보면 "어떻게 하다가 코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하는 질문을 자주 받고 있다. 확실히 영양사와 코딩은 언뜻 생각했을 때 바로 연상되는 관계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부트캠프를 들어간다는 건 '지금 속해있는 업계가 먹고살기 쉽지 않으니 개발자로 돈 좀 땡겨보겠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주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때문에 나는 종종 '긴 버전과 짧은 버전이 있는데 어떤 버전으로 들으실래요?'하고 되물어보곤 한다.
오늘은 둘 모두 아닌 '셰에라자드 버전'으로 답해볼까 한다.
중고등학생 시절
지금은 소비자로만 머물러 있지만, 초등학생 때 톨킨을 읽은 이후로 나는 회사에 들어갈 때까지 꾸준히 소설을 썼다. 대체로 장편이었지만 드물게 단편도 있었다. 처음에는 윈도우 메모장이었고 대체로 한컴이었다가 이후로는 쭉 스크리브너를 사용했다.
소설을 쓰면 보여줘야 하는데, 인쇄해서 주변에 돌릴 수는 없으니 네이버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 업로드하곤 했다. 한컴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복붙한 거라 다닥다닥 붙은 줄글이었고 그 이상으로 무엇을 개선할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친구의 소개로 들어간 소설 카페에서 처음으로 HTML과 CSS를 이용한 사례를 보았다. 자간, 줄간격, 글 너비 등을 고심해서 짜맞춘 흔적이 있었다.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네이버 블로그 에디터도 HTML과 CSS를 사용해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되어있었지만, 블로그 디자인 전체에 대한 접근은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자유도를 제공하는 곳은 워드프레스 아니면 티스토리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티스토리를 쓰고 있다.
워드프레스는 굉장한 자유도 덕분에 오히려 설치하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사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카카오에 흡수된 이후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개념이지만, 원래 티스토리에 가입하려면 '초대장'이라는 게 필요했었다. 얼마간의 금액으로 거래되기도 했지만 보통은 초대장 나눔한다는 포스트에 ─ 제발 초대장 한 장 만 좀 주십셔.. 하고 ─ 댓글을 달면 블로그 주인장 마음대로 초대장을 주고 안 주고 했다.
초대장을 받고 티스토리를 시작했다. 나는 HTML과 CSS, JS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내가 좋은 디자인을 가려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좋은 디자인을 바닥에서부터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무료 배포 중인 티스토리 스킨들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것을 가져다가 '소설 업로드 템플릿' 정도만 따로 하나 만들어서 사용했다.
고등학교 졸업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거의 세 달 가까운 시간이 비게 된다. 나는 수시 전형에 붙어서 이미 갈 곳이 정해진 몸이었고 최합만 잘 맞추면 큰 문제는 없었던 탓에 사실 9월 말부터 마음이 붕붕 떠있었던 것 같다. 그때 마침 같이 글을 쓰던 무리 사이에서 우리끼리 단편을 모아 책을 하나 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지나가는 이야기'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일단 누군가 운을 띄웠다면 즉시 실행에 옮겨야 했다.
인쇄본을 만드는 건 모든 게 돈이었다. 표지를 만들어줄 디자이너도 있어야 하고 내지를 편집해줄 디자이너도 있어야 한다. 인쇄소도 구해야 하고 종이도 골라야 하고, 일단 찍었으면 보관할 창고도 있어야 했다. 대략적으로 통밥을 굴려보았음에도 ─ 고딩 기준으로는 ─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했다.
그러나 인쇄본을 고집하지 않고 전자책으로 만든다면 위에서 언급한 많은 ─ 돈 나갈 ─ 부분이 생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국내에 자료가 많지 않았고 믿을만한 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보를 IDPF의 epub 2.0.1 버전 공식 문서를 읽어가면서 어찌저찌 습득해야 했다.
다행히도 epub은 HTML과 CSS로 만드는 아주 단순한 버전의 웹사이트와 다를 바 없었고, 티스토리를 통해 그쪽 부분은 이골이 날 만큼 익숙해져있던 상태인지라 한 달 만에 첫 전자책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리의 글이 담긴 이 단편집은 유통사를 끼고 온라인 서점에서 몇 년 정도 판매되었지만, 표지 디자이너한테 준 돈의 절반도 회수를 못했다….
인터미션
대학에 들어가서 휴학하고 군대에 갔다가 돌아와서 복학했다가 또 휴학하고 복학하는 동안 내 관심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HTML과 CSS로부터 벗어나 본격적인 HTML5와 CSS3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맘때 쯤에 나는 지금까지도 성서처럼 끼고 사는 <CSS3: 세상에 없던 가장 꼼꼼한 매뉴얼>을 구매해 읽었다. 좀 더 나은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SMACSS 관련 서적도 사서 읽어보았다.
전역하면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갈 생각이었는데,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기는 무거우니까 '고정형 전자책'으로 만들어 아이패드에 넣어다니면 좋겠다 싶었다. 이때 고정형 전자책을 만들면서 했던 고민들이 군 시절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코로나
막 중국에서 우한 폐렴이니 뭐니 하면서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던 19년 11월 쯤에 지인으로부터 재미있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지인은 소설 쓰던 시절 카페에서 만난 누님이었다. 누님은 본인이 BL 출판사를 차려보려고 하는데 전자책으로 편집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작업 단가가 대학생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전자책을 만드는 건 오로지 나를 위한 행위였다. 그러나 그 날을 기점으로 내게 전자책은 쏠쏠한 용돈 벌이 수단이 되었다. 나는 출판사들이 모여있는 카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홍보글을 작성했다. 누가 연락하겠나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셨다. 그 중에서도 꽤 규모 있는 출판사에서 작업 계약을 해준 덕분에 졸업할 때까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프리랜서 전자책 편집자를 표방하고 많은 전자책을 편집하게 되면서 자연히 내가 작업해야 할 전자책의 난이도도 올라가게 되었다. 게다가 종종 JS를 활용해서 '인터랙티브한' 전자책을 요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나는 겉핥기 수준으로 JS를 알았기 때문에 입문자를 위한 책 여러 권을 구매했지만 결국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나는 JS 문법과 DOM 조작 사이에서 어떠한 연결고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console.log에서 document.getElementById 사이에는 그 어떤 연관성도 없는 것 같았다. 결국은 어떠한 패턴 ─ 태그에 id를 부여하고, getElementById 메소드로 노드를 집어오고 하는 일련의 과정 ─ 을 거의 외워서 사용했다.
나는 내가 멍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JS를 이해하지 못하니 나름 자괴감 비스무리한 게 들었던 것도 같다.
취업 이후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니 계약서를 쓰게 되었다. 거기에는 겸임 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이때문에 전자책 쪽은 영 소홀해지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티스토리를 사용했고, JS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도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씻고 자야 한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 잔 해야 하고, 그렇게 살다보니 책을 읽지도 않고, 글을 쓰지도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그저 관성적으로 굴러가는대로 살게 되었다. 이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늙어가는 과정의 일부라 믿었을 뿐.
그러다가 유튜브 채널 <지식해적단>의 이 영상을 보고 갑자기 JS를 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의 말미에 쿠폰 코드를 입력하면 코드잇 1년 수강권이 25% 할인이라는 내용이 나왔는데, 할인을 해도 적은 금액은 아니었던지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날 저녁 집에 가는 길에 일시불로 시원하게 결제했다.
물론 이런 식의 결제가 다 그렇듯 나도 일단 결제 해놓고 실제로 강의를 자주 찾아 듣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JS 강의 찾아봐야지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 ─ 고 퇴근하자마자 맥주부터 따기 시작했 ─ 다.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없이는 그냥 그렇게 1년 수강권이 부질없이 흘러갈 판국이었다.
그런데 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내 인생에 아주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퇴사
출근을 했는데 팀장이 슬랙 메세지로 잠깐 자기 자리로 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20분 만에 퇴직 서류에 싸인하고 회사를 나왔다. 구조조정이었다. 계약직이 아니라 정규직이었던 탓에 강짜를 부려볼 수도 있었겠으나, 그냥 그러지 않았다. 그저 몇 달 간 월급을 보전해주겠다는 말에 '돈 받으면서 놀면서 다른 회사 알아보면서 젤다 신작 해야지' 같은 생각이나 했던 것 같다. 실제로도 5월 내내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 하느라 구직 활동할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코드잇을 구독하면 카톡과 이메일로 새로운 코드잇 소식을 보내준다. 그 소식지에서 나는 '코드잇에서 처음으로 프론트엔드 개발자 부트캠프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부트캠프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알아보니 코드잇 외에도 많은 다양한 곳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종류의 부트캠프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며칠 정도의 비교 끝에 코드잇 부트캠프를 선택했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는데, 6개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들은 3개월이나 4개월 위주의 커리큘럼이 많았고, 심지어는 10주 완성 같은 자극적인 홍보 문구를 앞세우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코드잇은 주차별로 무엇을 배우게 될지 상세하게 설명해놓았고, 그로 인해 6개월이 필요불가결하다는 말이 굉장히 납득 갔다.
게다가 코드잇에서는 커리큘럼 중간중간에 하게 될 기초/중급/고급 프로젝트가 대강 어떤 모습이 될 지 그 예시를 보여줬다. 각각의 프로젝트 예시는 그 당시 나로서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래서 더 좋았다. 어쨌든 이들이 제시한 커리큘럼을 따라가기만 해도 저런 어려워보이는 웹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코드잇 스프린트 1기에 지원하게 되었다.
코드잇 스프린트: 프론트엔드 트랙 1기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하다가 코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라는 질문에 대해 셰에라자드 버전으로 답을 내놓았다. 사실 이 질문은 코드잇 스프린트 지원할 때 면접을 보면서도 나왔던 질문이다. 당시에는 전체 면접 시간이 15분 정도라 아주 짧은 버전으로 답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부터는 코드잇이 제시한 6개월 동안 뭐를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part1 ( 23.09.04 ~ 23.10.14 )
지난 10년간 HTML과 CSS는 밥먹듯이 했으니 초반에는 좀 수월하지 않을까 하던 생각은 첫 1주일이 지나자마자 개박살 나버렸다. 유닉스 커맨드라인과 Git, Github 관련 내용이 시작되면서 나는 뇌가 과부화 되지 않도록 신경써가며 공부해야 했다. 이때부터 스프린트 내내 유지해온 습관 하나가 생겨났는데, 바로 '우선 기록하고 나중에 이해한다'는 것이다.
딱 보고 바로 이해할 수 있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나의 30대 두뇌는 알콜에 절여진 탓에 개념을 구조화하는 과정 일부가 예전만치 못해졌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무언가 이해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선 해당 개념에 대한 모든 내용을 기록해두었다가 점진적으로 그 개념을 구조화해나간다. 처음에는 거의 구조화가 되지 않았다 싶을 정도이지만 이러한 작업을 거듭해나갈수록 개념은 아주 단단하게 구조화되고, 또한 이 과정 속에서 처음에는 몰랐던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한다. 스프린트 기간 동안 구조화한 프로그래밍 개념들은 이 블로그의 프로그래밍 카테고리에 차곡차곡 쌓여있으니 관심 있으면 한 번 둘러봐도 좋다.
첫째주에 HTML CSS를 하고 둘째주에 커맨드라인과 Git, Github 관련 내용을 배웠다면, part1의 나머지 4주 동안은 자바스크립트였다. 솔직히 조금 두려웠다. 혼자서 책 사서 공부할 때는 당최 이해를 못해서 덮어놓고 외워버린 사람이니까. 혹시라도 자바스크립트 이해를 못해서 스프린트 중도 포기하게 될까봐.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족이긴 한데) A라는 개념에서 B라는 개념으로 넘어가는 걸 '멀리뛰기'라고 한다. 두 개념 사이가 가깝지 않을 수록 멀리뛰기를 잘 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끔 A라는 이야기를 하다 문득 B 이야기로 넘어가버리고는 한다. 그런데 이렇게 주제를 갑작스럽게 바꾸어도 독자는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은 일정부분 마술적 사실주의에 기대고 있고, 나머지 부분은 작가 본인의 멀리뛰기 피지컬로 해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혼자 공부할 때 JS 문법에서 DOM 조작으로 멀리뛰지 못했던 이유는 퍽 단순하다. 소설에서도 그렇고 공부에서도 그렇지만 멀리뛰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발 밑이 우선 단단해야 한다. 하루키는 멀리뛰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아주 단단하게 마련해둠으로써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전환해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DOM 조작에만 관심을 쏟은 나머지 기본적인 JS 문법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했다. 발 밑이 불안정한데도 멀리 뛸 수 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신기한 일일 것이다.
코드잇 스프린트에서 제공하는 JS 강의는 이 발 밑을 단단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자료형이 어떠느니 말로만 설명하는 책들과 달리 아무래도 짧은 호흡의 '영상 강의'로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제공되다보니 ─ 백문이 불여일견이랄까 ─ 이해하기가 훨씬 쉽고 또 재미있기도 하다. 게다가 새로운 내용을 배울 때마다 이를 내면화할 수 있도록 간단한 실습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DOM 조작 관련 내용은 아주 쉽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위에서 설명한 반복적이고 점진적인 개념 구조화 덕분에 결국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부분을 구조화 해둔 내용은 [ DOM과 인터랙티브 자바스크립트 ] 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part2 ( 23.10.16 ~ 23.11.25 )
파트1이 HTML과 CSS, JS, Github에 대해 배우는 '기초' 시간이었다면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React 시간이다.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코드잇 스프린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React가 뭐인지 그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서버와 통신하면서 데이터를 받아와서 가공해야 하는데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기초 프로젝트가 다가오고 있기에 '당장 필요한 것' 위주로 공부했지만, 그렇다보니 오히려 전체적인 그림이 조금도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React를 이해하고 있다 확실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넓게 보기로 했다.
어느날 아침에 나는 리액트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뭘지 a4 용지에 적어내려갔다. 다음 날에는 이 내용을 컴포넌트, 데이터 전송, 데이터 받기, 데이터 가공, 상태 관리라는 다섯 개의 테마로 묶어서 각각 새로운 a4 용지에 적었다.
새로 적을 때는 각 테마에 속한 내용을 가능한 잘게 쪼개어 어떤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필요한 최소 단위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했더니 리액트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53개의 개념을 이해해야 하고, 나는 그 중에서 열 몇 개 정도만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가장 먼저 '내가 이해하지 못한 개념 목록' 중에서 몇 개를 엄선해 오늘 공부할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부할 때마다 오늘 공부할 목록에서 해당 내용에 삭선을 긋는 것이다. 자기 전에 보면 목록 대부분에 삭선이 그어져있고, 가끔은 전부 그어져있으나 보통은 몇 개 정도 삭선을 긋지 못한 채로 하루가 지나간다. 그런 내용은 내일 이어서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가장 작은 단위의 개념을 삭선으로 그어가며 '내가 이 개념을 이해했다'는 사소한 쾌감을 작지만 자주 느꼈던 것이 즐겁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React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주 어려운 것을 힘들게 해내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결코 지속할만한 일은 아니다.
달성 가능한 최소한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꾸준하게 달성해나가는 기쁨이야말로 장기전에 훨씬 유리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part3 ( 23.11.27 ~ 24.01.13 )
React에서 Next.js로 넘어가면서 나는 서버에서 랜더링되는 환경까지 고려해야 했다. 배울 것이 '추가' 되었지만 이 역시 오늘 공부할 목록을 만들어가면서 하나하나 함락시켜나갔다. 문제는 중급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튀어나왔다.
분명 파트3가 시작될 때 우리 7팀은 다섯 명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프로젝트를 시작하자마자 한 명이 사라져버렸다. 아직까지도 그 분이 왜 스프린트를 중도 포기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프로젝트 도중에 한 분이 개인 사정을 이유로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버렸다. 그리하여 너덧 명이 해야하는 프로젝트를 우리는 셋이서 하게 되었다.
솔직히 이때가 가장 즐거웠다. 나는 압박이 있어야 더 즐기는 이상한 사람인데, 이때만큼 압박이 심할 때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한된 인력과 정해진 마감일과 한참 남은 할일…. 아드레날린이 폭☆발 해버려서 잠도 잘 못 자고 새벽까지 코드 짜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팀 미팅하고 또 코드 짜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vs code의 라이브 셰어 기능으로 한 사람의 컴퓨터에 모여 동시에 코드를 작성했다. 이렇다보니 다른 사람이 어떤 기능을 어떻게 짜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 ─ 을 빙자한 구경 ─ 할 수 있었다.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보니 코드를 쌓아가는 방식이나 구현에 있어 접근하는 방식도 각기 달랐다.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코드 리뷰는 결국 '나는 이렇게 안 할 거 같은데 이 사람은 이렇게 했네? 이 방식이 더 좋은 건가?'하고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개개인의 성장을 촉진한다고 생각한다. 파트3에서 우리는 실시간으로 서로의 코드를 읽으며 일종의 코드 리뷰를 했고, 실시간으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러나 분출하는 아드레날린이나 성장의 만족감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무언가가 파트3에는 있었다.
최근 읽은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한 집단이 함께 작업하면서 무엇인가를 느낄 때, 모든 것이 공동의 선과 관련되어있다고 믿을 때, 무엇이든 서로의 의사가 동시에 한 가지로 일치할 때, 그것이 바로 스윙이다." 파트3에서 우리는 종종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결국은 스윙을 했다.
part4 ( 24.01.15 ~ 24.03.02 )
사실상 모든 기간을 고급 프로젝트 준비하느라 쓴 거 같다. 여기서부터는 기획과 API가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백엔드 개발자와 디자이너와 함께 하나씩 쌓아올려야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황소고집이라 팀원들과 기획 이야기를 할 때부터 충돌이 잦았다. 사전 기획에서 내가 '여행 기록 및 공유' 서비스를 팀에 제시했을 때는, 사실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서비스의 구성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가 대강이지만 머리속에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팀원들의 의견은 나 혼자 했던 구상과 맞지 않았고, 팀 회의를 반복하면서 이런 의견 충돌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때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 초기의 아이디어가 내 것이기 때문이 이후 세부적인 부분까지도 팀원들이 반드시 내 의견을 따르도록 만들어야 하나? 어차피 같이 배우는 처지인데 한 사람은 지시하고 다른 사람들은 따르는 일방적인 구조가 말이 되나? 그래서 결국은 타협했다. 초기의 아이디어가 내 것이었을 지언정 프로젝트 전부를 내 것인 양 취급할 수는 없었기에.
타협은 다른 곳에서도 이루어졌다. 전체 팀원 7명 중 나 포함 네 명이 건강 문제로 최소 1주일 정도는 헤롱헤롱했다. (심지어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프다;;) 만들고 싶은 기능은 많았지만 프론트 백엔드 골고루 아픈 상황에서는 진도를 빼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최소의 최소 기능만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그것마저도 당일 아침에 겨우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결국 무슨 신박한 기능이던간 그걸 구현하는 건 ─ 아직까지는 ─ 사람이고, 건강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코드잇 스프린트 1기를 수료하며
지난 주말 코드잇 스프린트 1기 수료식이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6개월 언제 끝나나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렇게 빨리 지나간 6개월도 없었던 것 같다. 좋은 사람도 만나고 재미있는 사람도 만났지만 무엇보다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 아마 혼자였다면 중간에 나가떨어졌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비고비마다 ─ 아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 나를 지탱해준 많은 동료 스프린터들과 멘토님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달려와준 안유진, 이정윤, 이규호, 조연아, 임건우, 송민혁, 신혜은, 손지은, 손상희, 조유담, 김하늘, 남궁수영, 임석준, 안지수, 박세은, 이나경, 김나은, 김다은, 구혜지, 양진수, 김기연, 송규경 스프린터에게 다시 없을 감사를 전한다. 우리 모두의 완주를 위해 늘 옆에서 도와주시던 이용섭 교육pm님과 신승화, 김도인 매니저님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글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괴롭혀드렸던 이선주 멘토님과 이기주 멘토님, 소인성 멘토님, 그리고 특별히 더 감사한 정진우 멘토님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여러분 덕분에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없었더라면, 이라고 생각하기 싫을 만큼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블로그의 정보
Ayden's journal
Beard Weard Ayden